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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통권2
 글 쓴 이 : 관리자  등 록 일 : 2016-04-04 오후 10:37:59 조 회 수 : 1003
따비考
박호석(농협대학농업기게공학 교수)
우리 나라의 따비는 주로 섬 지방에서 산비탈의 밭을 일구거나 소를 사용할 수 없는 작은 밭을 일구는데 사용되었던 농기구이다.

따비는 인류의 최초의 연장이라 할 수 있는 뒤지개(창과 같은 긴 막대기로 열매를 따거나 식물의 뿌리를 캐고 또 흙 속에 씨앗을 묻었을 거라고 추정되는 도구)가 변해서 곡갱이나 삽으로 발전된 진화과정의 중간 형태의 농기구라 하겠다.

따비의 한글 명칭은 '따보', '따부' 등 여러 이름으로 불리어지고 우리 나라에서는 BC 4세기경의 방패형 청통의기(防牌刑 靑銅儀器)의 작은 크기의 청동판에 음문(陰紋)에 따비로 땅을 갈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따비는 주로 제주도와 서해도서 지방처럼 극히 한정된 지역에서 사용되었음을 미루어 볼 때 따비는 자갈이 많은 땅을 일구는데 매우 중요한 농기구였음을 알 수가 있다.

필자는 우리 나라의 서산 따비와, 제주도 따비, 덕적도의 따비의 형태와 중국의 따비 형태를 비교하고 특히 제주도의 따비가 우리 나라의 다른 지역과는 다른데 중국의 따비와 비슷한 점을 들어 이는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본다.

이 글은 따비라는 농기구를 통해서 도구의 역사와 형태를 통해서 그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와 어떠한 관계가 있는지를 가늠해 본 글이다.

     
저승길 안내자 동방삭과 저승사자
정종수(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사람이 태어나 살다 마지막 통과하는 관문이 죽음이고 그것을 다루는 의례를 상례(喪禮)라 한다. 또한 상례시에 죽은 망자를 장지까지 싣고 가는 운반 도구가 상여이고, 상여는 지역별로 조금씩 차이가 있기는 하나 보통 조립식 목 상여와 한번 쓰고 태우는 꽃상여가 있다.

상여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나무로 깎은 인물상이 있는데 이를 저승사자 혹은 저승길로 혼을 안내하는 길잡이 또는 동방삭이라 부른다. 이 동방삭의 꽂힌 위치나 숫자, 조각수법과 모양 또한 지역적으로 매우 다양하게 남아 있다. 이 글은 현재 남아있는 남연군 상여, 청풍 부원군 상여, 전주 최씨 고령댁 상여에서 볼 수 있는 동방삭들을 비교해 보고 동방삭을 상여에 태운 이유를 장수의 상징인 동시에 귀신을 쫓을 수 있는 힘을 가진 동방삭은 저승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로 내세워 영혼을 안전하게 저승으로 인도해 주기를 바라는 후손들의 염원의 표현으로 설명해 놓았다.

우리 조상들은 죽음을 몸과 넋의 분리 현상으로 보았고 사람이 죽으면 몸은 뭍이고 영혼은 저승으로 가 염라대왕에게 심판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에 동방삭을 상여에 놓는 것이다.

이 글의 재미있는 내용들 소개해 되어있는데 대표적인 이야기로는 제주도 지방에 전해져 내려오는 태어나는 순서는 있는데 죽는 순서는 정해지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있는 이야기가 실려있다. 또한 상여의 구조와 명칭 그밖에도 상여에 놓여진 여러 가지 목조 인형들의 사진이 실려있다.

     
충청 서해안의 살
주강현(민족문화연구소장)
충청도를 비롯한 우리 나라의 서해안 일대는 세계 제일의 리야스식 해안을 가지고 있다. 특히 충청도 일대는 밀물과 썰물의 격차가 심해 전형적인 서해안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충청도에서는 이러한 자연환경에 수심이 얕은 점, 만(灣)이 잘 발달된 점등이 어우러져 오래 전부터 연안어업이 잘 발달되었다.

이 글의 주제인 살 역시 그러한 자연환경을 이용한 예로써 미리 살을 설치해 놓고 물이 들어 왔다 다시 빠져나갈 때 물고기가 설치해 놓은 살에 걸리거나 갇히게 해서 물고기를 잡는 어법의 하나이다. 살의 종류로는 돌을 쌓아서 만든 돌살(독살)과 대나무와 같은 나무를 꽂아서 만든 어살이 있는데 지금도 충청도의 여러 지역에서는 예전의 돌살이 많이 남아 있다. 예전에 살은 마을 공동의 어장으로 대단히 많은 어획량을 가져다주었지만 차츰 나일론 그물이나 다른 어법들이 속속 등장하면서 그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이 글은 충청도의 보령지역과 태안 지역에 남아 있는 돌살을 중심으로 그 지역에서 돌살을 이용하는 방법이나 소유권, 돌살의 크기 등을 소개해 놓았다.

살을 이용한 어법이 사라진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그리고 살을 이용한 어법이 행해지는 곳은 지금도 남아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살을 통해서 우리 조상들은 주어진 자연환경을 어떤 식으로 이용하면서 삶의 극대화를 시켰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건축도구, 자(尺)
이왕기(목원대건축학과 교수)
한자로 자는 '척(尺)'이라 하는데, 이 뜻은 '가깝다'는 의미이다. 이처럼 자는 길이와 나비, 폭, 깊이, 두께, 각도 등을 그리며 헤아리는데 쓰이는 도구로 모든 공작의 기준이 되는 것이다.

자가 없던 시절에는 인체의 치수를 이용하여 기준을 정했는데 우리가 아는 지(指), 뼘, 보(步), 장(長)도 거기에서 나온 것이고. 자는 재는 장소, 물건, 방법, 모양, 시대와 나라에 따라서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리어 지기도 하고 만드는 재료에 따라서 그 명칭이 다양하다.

이 글은 중국,한국 고대자의 변천과정과 쓰임 등을 시대의 흐름과 함께 소개해 놓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주목해 보아야 할 점은 척도를 재는 기준이나 조정에서 제 척도의 기준을 정하기 위한 노력, 그리고 척도조정과 건축기술의 발달과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또한 여러 가지자와 자에 새겨진 문양들을 살펴보았으며 중국의 한나라 시대의 1자의 길이와 고구려의 리방의 크기, 세종 13년에 실시한 제 척도의 관계치가 표로 나타나 있어서 각 시대의 자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

     
멍석
주인택(광주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
멍석은 벼농사가 시작된 후 짚을 이용해서 엮어 만든 것으로 짚 제품 중에서도 내구성이 좋아 수공기술의 발달로 인해 생겨나 짚문화의 정수(精髓)라 할 수 있다.

이 글은 전라도 지방을 중심으로 멍석의 기원, 종류, 제작방법, 멍석의 좋은 품질, 멍석의 생활용구로서의 장단점, 멍석을 이용한 풍속을 살펴보았다.

멍석이 우리의 문헌상에 기록된 것은 17세기 초의 기록으로 처음에는 상류층을 중심으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며 멍석에 대한 명칭은 지역마다 매우 다양하고 멍석의 종류는 일반멍석, 도래방석, 반덕석, 베틀방석 등이 있고 멍석의 제작자는 주로 머슴들 이였다. 또한 멍석을 제작하는 시기는 주로 농한기 이였으며 하나의 멍석을 만드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7-10일 정도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멍석은 날줄과 씨줄 간격이 촘촘하고 두께가 균일한 동시에 가벼운 것을 최상품으로 치며 일상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건조기구이다.

우리는 멍석을 통해 옛 선조들이 농한기를 이용해서 멍석을 만듦으로써 농가소득은 물론 볖짚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던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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