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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목 : 통권1
 글 쓴 이 : 관리자  등 록 일 : 2016-04-04 오후 10:38:17 조 회 수 : 811
맷돌만들기
김광언(인하대 사회교육과 교수)
믹셔기나 분쇄기가 없던 과거에는 맷돌은 서민들에게 있어서 매우 귀중한 생활용품이었다. 이런 맷돌은 쓰이는 용도에 따라서 크기나 모양새가 다르긴 하지만 돌을 다듬어서 만드는 것은 별반 다를 바가 없다.

맷돌 생산지로 유명한 강원도 정선군 북면의 여량이란 마을에서 수 십년 동안 맷돌쟁이로 살아온 석수쟁이 김석순씨의 생애를 중심으로 맷돌 만드는 과정과 노고를 통해서 맷돌이 성행하던 시기의 풍속을 엿볼 수 있도록 소개한 글이다.

특히 하나의 맷돌을 만들기 위해서 처음 돌을 고루는 작업부터 완성한 제품이 전국 각지로부터 주문을 받아서 팔기까지의 과정이 맷돌을 만들 때 쓰이는 도구들과 맷돌쟁이의 실제 작업모습들이 사진과 함께 실려 있어 독자로 하여금 쉽게 맷돌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그러나 이 글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오랫동안 맷돌쟁이로 살아온 김석순씨의 거친 손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의 고집스러운 삶과 장인 정신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건축도구 먹통
이왕기(목원대건축학과 교수)
먹통은 일반적으로 목수나 석공들이 필수적으로 가지고 다니는 있는 도구로 흔히 먹통줄이라 부른다. 또한 먹통은 목수가 선생으로부터 일을 다 배우고 나면 물려받는 것으로 기술이 전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러한 먹통은 고대중국이나 이집트에서 출토되기도 했고 중국의 사료인 남사(南史)와 우리의 삼국사기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이 글은 먹통을 처음 사용한 시기와 먹통의 각 부위별 명칭, 사용방법, 먹통의 재료, 먹통으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과 조선시대의 김홍도의 화폭에서 나타난 먹통의 모습들이 상세하게 소개되어 있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는 우리 나라의 먹통에 나타난 전통문양을 통해서 그 문양이 지닌 주술적 의미들과 우주관을 이야기하면서 일본과 중국의 먹통의 기원과 형태를 살펴보고 3국간의 전승과정 속에서 우리의 먹통이 비록 중국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만의 독특한 멋을 지닌 이유를 소개한 글이다.
     
千齒의 侵入과 그네의 沈沒
인병선(짚풀생활사박물관 관장)
이 글의 주제는 우리의 전통 농기구인 '그네'가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천치(千齒)로 이름이 바뀌게 된 이유를 살펴보고 그것을 통해 잃어 버렸던 우리의 전통의 모습과 주체성을 찾고자 하는데 있다.

'그네'는 벼를 흝는 우리의 농기구이다. 그에 반해 천치(千齒)는 그네와 같은 기능을 하는 농기구로서 일본에서 불리어지는 이름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의 명칭인 '그네'는 문헌이나 연구자들조차도 명확히 규정짓지 못한 채 단지 일본의 천치로 규정되어 버린 비참한 운명을 맞았다.

필자는 여러 가지 자료와 문헌, 그리고 명칭에서 나타난 어휘의 분석을 통해서 천치가 우리의 명칭이 아닌 일본에서 이입된 점을 2가지로 요약해서 적어 놓았다.

첫째는 천치에 관한 기록은 우리의 어느 고서(古書)에도 없다는 점과 둘째는 독자적인 명칭 없이 일제시대에 '그네'라는 남의 명칭을 차용했다는 점이다.

그네를 사용했던 우리 민족은 일본이 천치를 가져오자 기능이 같은 그것에 똑같은 이름을 붙였다. 즉 농기구 천치는 받아 들여졌지만 명칭까지는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다.

어쨌든 이 글이 시사해 주는 바는 많이 있다. 그 중에서도 우리가 시급히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 주는 글이다.
     
지팡이 考
정종수(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관)
지팡이의 쓰임은 몸이 불편해서 혼자 움직일 수 없을 때 쓰이고,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상주들이 짚고 다니는 도구이다.

이 글은 상주들이 짚고 다니는 지팡이의 풍속도를 통해서 지팡이의 의미를 새롭게 정리해 보았다.

일반적으로 상주들이 사용하는 지팡이를 상지(喪杖)라 하고 상지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3년 동안 짚고 다니는데 이는 일반인과 다르게 상주가 잘 먹지 못하기 때문에 기운이 없어서 짚기도 하고 상주가 부모를 잘 보살펴 주지 못한데 대한 죄인으로 취급되어 짚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상주의 신분을 나타내기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대나무를, 어머니가 돌아가시면 오동나무를 지팡이로 하는데, 이유는 대나무는 사시사철 변함없이 효를 다한다는 뜻이고, 오동나무는 어버이를 위한 마음이 늘 같은(同) 마음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 조상들은 단순한 지팡이 하나에도 부부유별의 정신 뿐 아니라 유교의 근본 사상인 仁孝思想과 誠敬의 정신을 깊이 받아주는 상징성을 담았다. 상주의 지팡이는 단순한 막대기가 아닌 그야말로 살아 움직이는 지팡이 노릇을 해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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